2009. 10. 18. 15:30

물리치료학의 역사


물리치료학의 역사

 

1. 물리치료학의 태동과 변화

 

고대부터 여러 물리적 인자들(전기, 광선, 물, 열, 냉, 수기, 운동)을 민간요법으로 사용하여 왔다. BC 460년 경 Hippocrates와 Galenus 등은 massage, manual therapy techniques와 hydrotherapy 등으로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전해진다.

 

1813년 스웨덴의 Per Henrik Ling(“Father of Swedish Gymnastics”)이 the Royal Central Institute of Gymnastics (RCIG)를 설립하여 massage, manipulation과 exercise 등을 가르쳤다.

 

Per Henrik Ling


1887년 Sweden의 National Board of Health and Welfare에 “Physical therapist”를 공식등록(official registration)되었다.


1894년 네 명의 영국 간호사가 Chartered Society of Physiotherapy를 설립하였다

 

1913년 New Zealand의 University of Otago에 The School of Physiotherapy를 설립하였다.

 


1914년 미국 Oregon, Portland의 Reed College에 물리치료 교육과정이 설립되었고, 그 당시 "reconstruction aides"라 불렸던 치료사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다.

 

1900년대 초 소아마비(poliomyelitis)의 유행으로 물리적 인자(physical agent)를 이용한 물리치료가 치료적 중재(therapeutic intervention)의 전문영역으로 활용됨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World War I)으로 물리치료가 새로운 변혁을 겪음. 군내 내 속성 교육 프로그램 개설 후 미국 내 14개 주에 교육프로그램 개설. 미국 군인 외과병원에 신체재건(physical reconstruction) 영역 설립. 물리치료, 작업치료, 교육, 취미, 직업 훈련 등을 시행. 물리치료로는 수치료, 전기치료, 기계적 치료, 능동운동, 게임, 마사지 등을 시행. 1차 세계대전 후 물리치료의 관심은 전투력의 회복과 유지에서 산업장에서 생산능력을 유지하는 쪽으로 전환됨

 

1910년대 영국에서 교육받은 Mary McMillan이 미국으로 와서 정규 물리치료프로그램을 시작함. Mary McMillan은 공식적인 미국의 첫 번째 물리치료사로 인정받았고, “Mother of modern physical therapy"라고 불림.

 

Mary McMillan


1921년 American Women's Physical Therapeutic Association이 설립되고 Mary McMillan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1947년 American Physical Therapy Association으로 변경)

 

1939~1945년 2차 세계대전(World War Ⅱ)동안 물리치료사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여 군병원, 사병원, 각 학교에서 물리치료사 양성과정이 급격히 생겨남.

 

1979년 메릴랜드(Maryland)주에서 최초로 물리치료사에 의해 치료를 하기 전에 의사의 의뢰가 필요하다는 법조문을 폐지하였다. 이때부터 일반인이 의사를 거치지 않고 면허가 있는 물리치료사에게 직접방문(direct access: DA)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DA가 허용되고 있다. DA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국가에서도 가능해졌으며 최근 인도네시아도 2003년부터 DA가 가능해졌으나 한국은 아직 DA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이후 학부과정의 물리치료 교육과정은 없어지고 물리치료학 박사과정(Doctor of Physical Therapy: DPT)의 교육으로 전환됨




2. 물리치료학의 시대적 변화

 

1921년 Mary McMillan은 물리치료를 마사지, 치료적운동, 전기치료, 수치료를 포함한 네 분야라고 기술하였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물리치료학의 학문적 발전과 시대적 요구, 환경 변화 등에 따라 크게 발전해 왔다.

 

 

제 1세대 First Era

Focus on dysfunction of the peripheral neuromuscular and musculoskeletal systems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전쟁 부상자와 소아마비로 인해 발생한 말초 신경근계와 근골격계의 기능부전(dysfunction)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물리치료가 시행되던 시대이다. 기능 부전의 정도를 평가하기 위하여 도수근력검사(manual muscle testing)라는 정량적 평가방법을 사용하였다. 물리치료사가 진단이나 치료를 결정하기 보다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치료를 시행하였다. 소아마비 치료를 위해 신장운동(stretching exercise)과 보조기 착용을 이용한 관절 가동범위 유지, 근력 강화 운동 등이 중요한 치료내용이었다.

 

근육과 관절의 완전성(integrity)을 유지하기 위한 신전운동, 근력강화 운동, 기능 훈련이 초점이 되었던 시대.

 

 

제 2세대 Second Era

Focus on central nervous system dysfunction

 

전쟁의 종료, 소아마비 백신의 발명으로 물리치료의 관심영역이 중추신경계 손상환자인 뇌졸중(stroke), 두부 또는 척수손상(head or spinal cord injury), 뇌성마비(cerebral palsy)로 전환되었다. 중추신경계 기능부전에 의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전의 검사방법과 치료기법들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stretching exercise, MMT 등). 신경계 기능부전환자의 손상기전이 밝혀져 있지 않아 지료 지침(guideline)이 있는 적절한 치료방법이 확립되지는 않았고 임상가 개개인의 경험과 신념에 기초한 치료체계가 개발되었다.

 

이 당시 개발된 신경발달치료(neurodevelopmental treatment; NDT), 고유수용성 신경근 촉진법(proprioceptive neuromuscular facilitation; PNF), 보이타 치료(Vojta), 브룬스트롬 접근법(Brunnstrom approach), 루드 접근법(Rood approach)등이 대표적인 치료기법이다. 중추신경계 기능부전의 결과로 발생한 운동문제에 대한 병태생리학은 그 당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물리치료사들은 중추신경계 운동손상에 관여하는 기전에 대한 설명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1976년 NUSTEP conference(the Northwestern University Special Therapeutic Exercise Project)를 개최하기도 하였으나 중추신경계관련 운동송신의 병태생리적 기전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법의 기전이나 효과를 밝히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동안 효과적인 인체의 움직임을 위해서는 신경계의 조절기능이 매우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제 3세대 Third era

Focus on joint dysfunction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수기치료(manual therapy) 방법들이 물리치료에 소개되고, 근골격통증(musculoskeletal pain)이 있는 환자를 관절기능(joint function)에 기초한 평가와 치료기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기법들은 부수관절운동(accessory joint motion) 검사와 치료를 사용하여 그와 관련된 통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관절가동법(joint mobilization)과 관절조작법(manipulation)등의 여러 가지 수기치료를 적용하는 것이다.

 

James Cyriax, Maitland, Kaltenborn, McKenzie등의 임상가들이 개발한 치료법들은 근력강화를 위해 사용했던 기존의 일반적 치료방법에서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치료체계를 개척하였다. 이로 인하여 물리치료사의 역할에 변화가 생겼는데, 의사의 진단에 근거하여 처방된 치료를 하는 수동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물리치료사가 통증의 근원을 결정하기 위하여 관절을 검사하고 그것에 기초해 치료를 실시하게 되었다.

 

 

제 4세대 Current era

Focus on the movement system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근골격계 통증환자들은 물리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고객이 되었다. 물리치료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움직임(movement)이 물리치료 서비스의 중심으로 대두되었고, 운동기능부전(movement dysfunction)이 물리치료 중재(intervention)의 초점이 되어야 할 근본문제로 강조되었다.

 

물리치료의 내용이 일시적인 통증 완화치료 또는 통증이나 기능 부전의 원인(source)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근골격계, 심호흡계, 생역학적요소(biomechanical element), 대사계(metabolic system)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통증이나 기능부전의 원인(cause)을 규명하여 그 원인을 제거하는 적극적인 치료접근법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3. 한국 물리치료의 역사

 

1949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Thelma B. Maw (한국명, 모우숙) 여사가 한국에 파송되어 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서구식 물리치료를 일반인에게 제공함

 

1950년 6.25 전쟁 중 전투력 유지와 부상병 재활을 위해 군대 내 물리치료 양성과정이 생겨 9개월의 단기 과정을 거친 후 부상군인에게 물리치료를 제공

 

1959년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인 Marion E. Current (한국명, 구애련. 한국 물리치료와 작업치료의 어머니) 여사가 세브란스병원으로 파송되어 물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1967년 물리치료사 양성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이 프로그램은 교육 과정을 인정받지 못해 3년 후 폐쇄되었다.)

 

모우숙 선생님과 구애련 교수님


1963년 고려대학교 병설 의학초급대학에 물리치료과가 처음 개설되어 정규교육이 시작되었다.

 

1974년 신구전문대학, 1976년 동남보건대학, 원광보건전문대학, 1977년 대구보건대학, 1978년 광주보건전문대학에 물리치료과가 개설되어 2년제 전문대 과정의 물리치료 교육이 전국에 생겨났다.

 

1979년 연세대학교 보건학과(재활학 전공)내에 물리치료전공과 작업치료학전공이 개설되어 국내에 최초로 4년제 정규대학 교육이 시작되었다.

 

1991년 기존의 2년제 전문대학 교육과정이 3년제로 개편되었다.




4. 물리치료 관련 협회 및 학술지

 

1951년 세계물리치료연맹(World Confederation for Physical Therapy: WCPT)이 창설되었으며 우리나라는 1974년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1965년 대한물리치료사협회를 결성

 

1980년 대한물리치료사협회의 제안으로 아시아 물리치료연맹(Asian Confederation for Physical Therapy: ACPT)이 결성되었다.

 

물리치료 관련 유명학술지로는

 

미국의 Physical Therapy(SCI 등재), 영국의 Physiotherapy, 캐나다의 Physiotherapy Canada, 오스트레일리아의 Australian Journal of Physiotherapy등이 있으며, 국내학술지로는 학술진흥재단 등재지인 한국전문물리치료학회지(Physical Therapy Kore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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