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3. 23:51

수 많은 의학서적들이 번역되고 한글로 편찬되고 있지만

제가 KMLE 게시판에 쓴 글에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박경한 교수님께서 직접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

좋은 화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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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환석




과거에 비해 아주 많은 의학서적들이 번역되고 한글로 편찬되고 있지만 
이 많은 서적들 중 보기 편한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번역서들의 번역의 질이 문제였지만 
현재는 그러한 번역의 문제는 많이 줄어든것 같습니다만 

이제 문제는 
한글화된 의학용어라고 생각됩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한글용어, 영문의학용어 모두 다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배우는 학생들도 
처음 배우는 생소한 용어들도 어려운 마당에 
과목마다 한글을 사용하는 선생님, 영문을 사용하는 선생님때문에 
많은 혼동이 온다고 합니다 

어떤 학문이든 
그 학문을 구성하고 있는 용어들이 참 중요한데 
용어때문에 학문접근이 어렵다면 
이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경우에는 
한글용어의 생경함때문에 
그냥 원서를 구입해서 원서를 읽는 것이 
더 편하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박경한 교수님의 번역서 중에 있는 것같습니다 



박경한 교수님이 번역한 이퍼블릭에서 나온 Barr의 인체신경해부학을 보면 

"Diencephalon(사이뇌, 간뇌)과 telencephalon(끝뇌)은 함께 cerebrum을 구성하는데......." 

이렇게 영문의학용어 표현이 먼저 나오고 괄호 안에 한글 표현이 있는데 
이 경우가 책을 읽고 이해하기에 훨씬 빠르고 편한 것 같습니다 

무조건적인 한글의학용어 사용보다는 
이러한 표현이 
더 정확하고 빠른 정보정달에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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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한


신경해부학 책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O대학 그 교수님 아니신지요? 

저도 한글용어 문제로 고민이 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자용어보다 한글용어를 선호하지만 교육의 주체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에 제 소신대로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21세기 들어 시도한 게 영(한) 식 강의였고, 2004년인가 해부생리학입문이란 책을 처음으로 영(한) 편집했습니다. 특히 해부생리학은 해부학교수(한글용어 선호)와 생리학교수(한자용어 선호)가 함께 가르치기 때문에 제가 한글용어를 고집할 수 없었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병원이나 학계에서 영어의학용어를 가장 널리 사용하고, 학생에게 권할 만한 의학사전은 영영의학사전뿐이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한글 의학사전이 많이 개선되고 인터넷에서 한글의학용어 검색이 쉬워졌습니다만). 또 의예과생보다는 전문대학원생이나 학사편입생들이 영어 학술용어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한자식 의학용어는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자 의학용어 중엔 우리가 쓰지 않는 일본식 한자가 적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세대는 이 일본식 한자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자에 비교적 밝은 저도 그런데(어릴 때 한문 선생이 중문학 전공하라고 했었음) 요즘 어린 학생들에겐 매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영어 의학용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겐 영어 의학용어의 형성 원리와 의미를 먼저 익히면 한글 의학용어는 이해하기 쉽다고 가르칩니다. 최근 제정된 한글 의학용어도 영어의학용어에 적용된 공식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단한 한글 의학용어는 평균 수준의 국민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균 수준이란 고교 생물이나 보건 교과서에 나오는 용어 정도? 그래야 의사와 환자 사이, 의료인들 사이에 의사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겠죠. 의사만 알아듣는 용어는 '의학용어'가 아니라 '의학은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의학용어를 한글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포 미만이나 물질, 분자 수준의 의학용어는 일반인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고도의 전문용어가 대부분이니 그냥 원어(영어)를 사용하면 된다는 게 제 의견임다. 또 신경해부학이나 발생학 같이 어려운 용어가 많고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는 영(한) 식 교재가 좋은 것 같습니다. 조직학에 나오는 미세 구조나 물질은 구태여 한글 용어를 쓸 필요가 없구요.